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손석희씨가 쓴 지각인생

손석희 아나운서가 97년부터 2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담은 글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달 여 전부터 주로 '지각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이 글은 손석희 아나운서가 지난 97년부터 2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월간중앙 2002년 4월호‘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시리즈에 담은 것이다.

그는 이 글에서 유학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억울함에 겨워 눈물을 흘린 일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회상했다.

네티즌들은 '지각인생' 글을 통해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각종 카페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옮기고 있다. 네티즌 ‘라알라’ 님은 “요즘 부쩍 늦은 인생살이로 걱정에 찌들렸는데 이 글을 접하니 다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네티즌 ‘수현’ 님은 “하루는 공무원, 하루는 늦깎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후회도 많이 하는데 손석희 님의 글을 보니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열심히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밝혔다.

손 아나운서는 지난 7일 “요즘 이 글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당시 글을 쓸 때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었는데, 이 글을 보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힘을 낸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다음은 손석희 아나운서가 쓴 글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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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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