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8일 금요일

빛으로 신경세포를 조절을? (Science on 신의리모컨 광유전학)

‘신경세포를 움직이는 빛’


광유전학(optogenetics)은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기술이다.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원하는 대상에 빛 감지 센서를 달고, 빛을 이용해 신경세포를 조종하는 광유전학 기술이 개발되면서 정교한 신경회로 조작이 가능해졌다.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신경세포와 신경회로를 조작할 수 있게 된 것. 광유전학이 무엇이며, 이를 이용한 몇몇 연구 사례를 살펴본다.
00optogenetics1.jpg»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들은 ‘몸’은 기계 배양기에서 살지만 ‘정신’은 뇌에 꽂힌 케이블을 통해 가상세계인 매트릭스에서 살아간다. 출처/ 영화 매트릭스
[이번 글의 주제 논문]

Nagel G, Brauner M, Liewald JF, Adeishvili N, Bamberg E, Gottschalk A. Light activation of channelrhodopsin-2 in excitable cells of Caenorhabditis elegans triggers rapid behavioral responses. Curr Biol. 2005 Dec 20;15(24):2279-84.


봇기계들이 끝없이 진화하던 어느 날, 인간과 기계가 전쟁을 벌입니다. 인간은 그 전쟁에서 참패하고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기계는 인간을 자신들의 ‘건전지’로 만듭니다. 인간은 기계 안에서 태어나, 기계 안에서 살아가며, 기계 안에서 죽습니다.

하지만 정작 인간은 그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기계가 인간 뇌에 전극을 꽂아 가상현실인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감각을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실제로는 배양기계 안에 떠있으면서 자신이 맨해튼 거리를 거닐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스테이크의 맛을 느낍니다. 영화 <매트릭스>(1999)의 이야기입니다.

<매트릭스>는 영화로만 볼 영화가 아닙니다. 워쇼스키 감독은 현실 세계의 청중에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고 묻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여기’가 ‘매트릭스’ 안이 아니라고 입증할 방법이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불가능함은 감각 행위의 본질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각 신경세포는 1000개가 넘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관계를 맺어 100조개가 넘는 신경접속을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감각 경험은 바로 이 어마어마한 신경회로 안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사건’에 불과합니다. 전원을 꽂은 컴퓨터에서 수많은 전기회로들이 영화를 상영하듯, 우리 뇌 속의 신경회로에 끊임없이 전기가 흐르면서 감각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죠.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역시 기계가 뇌를 조작해 이뤄지는 가상현실 속의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의심하는 신경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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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의심하라’입니다. 사실 이 메시지는 400년 전의 한 위대한 철학자의 메시지를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의심의 제왕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데카르트(1596~1650)는 착시 현상에서 감각 작용의 객관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쳐, 자신이 ‘악령’에 사로잡혀 환각에 시달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의심까지 이르게 됩니다.

믿을 게 하나 없는 세상 앞에, 그는 위대한 탄식을 내뱉습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우리말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더 정확히 해설하자면 “의심한다, 고로 의심하는 나는 존재한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모든 걸 의심할 수 있어도, 끝내 그 의심을 하는 ‘나’라는 존재까지 의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의심하는 주체, 즉 ‘이성적 자아’는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를 활짝 열게 됩니다. 데카르트는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최초의 근대인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중세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코기토 에르고 숨’ 논변에 이어서 다음으로 ‘신의 존재 증명’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나’를 가능케 한 존재가 분명 존재해야 하며, 그 존재는 ‘신’일 수밖에 없다는 중세적 믿음을 고전이 된 그의 명저 <방법서설>에서 표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 봅시다. 인간은 기계 안에서 태어나 기계 안에서 생각하며 기계 안에서 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계를 인간의 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매트릭스>에서 기계는 데카르트의 ‘악령’과 정확히 일치할 따름입니다. 악령은 그저 ‘감각’만을 속일 수 있습니다. 기계는 스테이크의 시각적 환상과 환상적인 맛을 주입할 수 있을 뿐, 인간이 스테이크를 ‘썰게’ 하지는 못합니다. 판단과 결정은 최종적으로 인간의 몫이며, 기계는 매트릭스의 삶을 의심하는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트릭스>가 ‘자유 의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판단과 결정 역시 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사건에 불과합니다. 군침 도는 스테이크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손과 팔더러 칼질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도 역시 ‘뇌’입니다. 나는 채식주의자인데, 기계가 케이블을 통해 고기를 썰어 먹으라는 신경 네트워크를 실행한다면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데카르트가 했던 ‘의심’조차도 뇌의 신경회로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사건입니다. 만약에 누군가 데카르트의 ‘의심 신경회로’를 켜버린다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의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코기토 에르고 숨”을 ‘인위적’으로 유도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데카르트의 정의에 따르면 ‘나의 의심을 가능케 하는 자’는 바로 ‘신(神)’입니다. 어떤 사람이 데카르트의 의심을 일으키는 힘을 갖게 된다면 그가 바로 데카르트의 신이 아닐까요.


인간 영혼에 꽂힌 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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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의 신경회로를 조작하는 힘, 즉 영혼을 통제하는 그런 ‘신의 힘’을 인간이 가질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힘을 우리는 오래전 얻었을 뿐 아니라 끝없이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뇌에 직접 전극을 꽂아 전류를 흘려보내는 방식입니다. 18세기 중반 이탈리아 과학자인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98)는 신경과 근육이 전기적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고했습니다. 이후 19세기 초부터 신경생리학자들은 뇌에 직접 전극을 꽂고 전류를 흘려 뇌의 기능을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뇌>는 ‘전기적 뇌 자극’이라는 소재를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컴퓨터와의 체스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뇌에 전극을 심습니다. 쾌락을 느끼게 하는 뇌의 ‘쾌락 중추’를 지능 훈련 뒤에 자극하는 방식으로 지적 능력을 발달시켜 나갑니다. 혹시 모를 끔찍한 사태에 대비해 그는 자신의 뇌를 조작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깁니다.

사실 이 소설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제 실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954년 캐나다 맥길대학의 제임스 올즈 연구팀은 역사적인 연구를 진행합니다. 쥐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심은 뒤, 쥐에게 스스로 레버를 누르면 전류가 흘러 쾌락이 주어지는 조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쥐는 밥도 물도 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레버만 눌러댔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쥐는 아무 고생 없이 자기 자신에게 극도의 쾌락을 줄 수 있는 전능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00optogenetics2.jpg» 쾌락 중추에 전극이 꽂힌 쥐는 모든 생존 활동을 포기한 채 죽을 때까지 레버를 눌러댔다. 죽는 그 순간에도 쥐는 행복했을까.출처/ 주 [1]그러나 전극을 꽂아 직접 전류를 흘려보내는 이런 방식으로는 뇌의 신경회로를 정교하게 조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뇌 속에는 엄청나게 높은 밀도로 신경세포가 밀집돼 있습니다. 뇌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전극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전극을 자칫 잘못 꽂았다간 엉뚱한 신경회로가 자극되어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좁은 지역에 수많은 신경회로들이 중첩돼 있어 원하는 신경회로만을 자극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기도 합니다.

비유하자면, 전기적 뇌 자극은 근처의 모든 전기회로를 켜버리는 ‘포괄적 리모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제품들의 전원을 켤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내가 원하는 전자제품을 선택적으로 켜긴 힘든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집에 들어와서 티비를 보려고 리모컨을 눌렀더니, 갑자기 전기오븐과 세탁기와 에어컨과 집안의 모든 전등과 청소기와 식기세척기가 한꺼번에 켜져서 작동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십상인 것이죠.


신의 리모컨, 채널로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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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 리모컨이 티비만 선택적으로 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티비 리모컨에만 반응하는 ‘수신기’가 티비에 내장돼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적 뇌 자극이 선택적으로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조작하고자 하는 신경회로만 전기 자극을 받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 뇌 속에 ‘리모컨-수신기’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다면 감각과 행동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02년 <사이언스>에 그 힘을 가능케 할 역사적인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논문은 신경과학 연구팀이 아니라 미생물을 연구하던 게오르그 나겔(Georg Nagel)과 페터 헤게만(Peter Hegemann)의 공동 연구팀이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클라미도모나스’라는 작고 둥근 단세포 녹조류에 주목했습니다. 이 녹조류에 빛을 쬐어주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주광성(phototaxis)을 나타냅니다.
00optogenetics3.jpg» 빛을 향해 나아가는 행동 반응을 보이는 클라미도모나스. 채널로돕신이 망가진 돌연변이인 H17에서는 그런 반응이 사라진다.출처/ 주[2] 
연구팀은 녹조류가 빛을 ‘감각’하고 그 빛으로 이동하려는 ‘행동’ 사이를 매개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한 가지 단서는 빛을 쬐어주면 클라미도모나스 안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채널로돕신’이라는 분자가 빛을 감지해 전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녹조류의 ‘채널로돕신’이 인간 신경회로를 조작하는 리모컨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리모컨을 이용해 켜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뉴런이라고 불리는 신경세포입니다. 신경세포는 일종의 전선으로 기능하는데, 평소에 신경세포 내부는 음전하를 띈 음이온이 많아 음의 전위를 갖고 있습니다. 자극이 주어지거나 다른 신경세포로부터 신호를 전달받으면 세포 바깥의 양이온들이 세포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신경세포가 켜지게 됩니다.

00optogenetics4.jpg» 빛을 쬐어주면 레티날이라는 물질의 구조가 변하면서 채널로돕신의 통로가 열리게 된다. 열린 통로로 칼슘과 나트륨 같은 양이온이 쏟아져 들어온다.출처/ 주[2]
만약 녹조류의 채널로돕신을 신경세포에다 심는다면 어떨까요? 빛을 쬐어주는 것만으로도 전류를 흐르게 하여 결국 신경세포를 켜거나 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빛을 ‘리모컨’으로, 채널로돕신을 ‘수신기’로 사용해서 ‘리모컨-수신기’ 시스템을 통해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자는 이런 상상력을 현실 세계에서 ‘실험’하는 사람이자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연구팀이 최초로 포유류 신경세포에서 빛과 채널로돕신을 리모컨과 수신기로 사용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엔 채널로돕신을 발견한 연구자 중 한 명이었던 게오르그 나겔이 포함된 연구팀이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신경‘세포’가 아닌 동물 ‘개체’의 행동을 최초로 조작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초파리와 쥐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에서 채널로돕신을 이용해 행동을 조작한 연구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빛’이 신의 리모컨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빛과 유전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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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겔이 채널로돕신 수신기를 심기로 결정한 동물은 바로 예쁜꼬마선충이었습니다. 왜 하필 예쁜꼬마선충이었을까요. 논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제 생각엔 ‘투명함’이 한 가지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했을 듯 합니다. 수신기가 빛을 감지해야만 신경회로를 켤 수 있는데, 불투명한 피부가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면 리모컨이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예쁜꼬마선충에서는 빛 리모컨과 채널로돕신 수신기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꼬마선충의 몸속에 리모컨 수신기를 어떻게 심을 수 있을까요? 채널로돕신은 원래 녹조류의 세포막에 꽂혀 있는 ‘통로 단백질’의 일종입니다. 이런 녹조류 단백질을 신경세포에 직접 이식해 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녹조류에서 채널로돕신 단백질만 모으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얻어낸 단백질이더라도 원하는 신경세포 막에만 심을 길이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생물학자들은 유전학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클라미도모나스의 세포막에 채널로돕신 단백질이 존재하는 것은 클라미도모나스가 자신의 디엔에이(DNA) 안에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산물들의 ‘조리법(recip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 캔자스 시골에 한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감자전이 먹고 싶다고 가정해봅시다. 한국에서 감자전을 부친 다음 잘 포장해서 국제 택배를 이용해 보내주는 것보다는, ‘감자전 조리법’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서로 행복한 방식일 겁니다. 

여기서 감자전은 채널로돕신 ‘단백질’에 해당하는 ‘산물(product)’이며, 감자전 조리법은 채널로돕신 ‘유전자’에 해당하는 ‘정보(informa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주방이 갖춰진 곳이라면 조리법만 알려주면 얼마든 감자전을 부칠 수 있습니다.

‘산물’ 대신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는 몇 가지 효용이 있습니다. 우선 캔자스 아주머니가 앞으로는 언제든 원할 때 감자전을 부쳐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조리법에 몇 가지 수정을 가하면 미국식 ‘소세지 감자전’과 같은 변형된 산물들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리법은 아들딸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쉽게 전수돼 계속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 한국에서 감자전을 직접 만들어 보내줬다면 불가능한 일들일 겁니다.

우리 세포는 갖은 단백질들을 요리해내는 적절한 주방이자 요리사입니다. 유전자라는 조리법만 주어지면 그에 걸맞은 단백질 산물들을 능히 만들어냅니다. 조리법에 몇 가지 편집을 가해 변형된 산물을 쉽게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대대손손 단백질 생산 능력을 물려주기도 합니다.

리모컨 수신기인 채널로돕신 단백질도 예외는 아닙니다. 꼬마선충에 녹조류의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주입하면, 꼬마선충은 리모컨 수신기를 내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전자 이식된 벌레(transgenic worm)는 이제 빛 리모컨으로 신경 회로를 조작할 수 있게 됩니다.

광유전학(optogenetics)은 이처럼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기술입니다.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원하는 대상에 빛 감지 센서를 달고, 이를 빛을 이용해 조작하는 광유전학 기술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전기적 뇌 자극에 비해 훨씬 정교한 신경회로 조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신경세포와 신경회로를 조작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꼬마선충을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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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리모컨 수신기를 발굴했고, 수신기를 꼬마선충에 심을 광유전학적 기술까지 마련됐습니다. 그 힘을 이용해 게오르그 나겔과 알렉산더 가책(Alexander Gottschalk) 공동연구팀은 꼬마선충의 ‘악령’이 되기로 합니다. 데카르트의 감각을 속이는 악령 말이죠.

가는 철사로 꼬마선충의 머리를 두드리면 촉각 신경들이 켜져 뒤로 도망가는 행동 반응이 관찰됩니다. 촉각 신경에 달려 있는 감각 센서들이 두드리는 자극을 감지해 도망가는 신경회로를 켜기 때문이죠.

연구팀은 이들 촉각 신경세포들에 채널로돕신을 발현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빛을 쬐어주었더니 놀랍게도 벌레들이 뒤로 물러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센서에 아무런 물리 자극이 가해지지 않았는데도 벌레는 마치 누가 자기 머리를 두드렸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아마 벌레는 누군가 자기 머리를 두드렸다고 틀림없이 믿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머리를 두드렸을 때와 빛 리모컨으로 환각을 일으켰을 때 벌레의 뇌에서 일어난 사건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동일한 실험을 ‘행동 장애’를 가진 벌레에서도 수행했습니다. 꼬마선충 돌연변이들 중에는 머리를 두드려도 뒤로 도망가지 않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촉각을 느끼는 센서가 고장나 머리를 두드려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벌레들입니다. 만약 이 돌연변이 벌레에서 촉각 신경을 빛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켠다면 어떻게 될까요?

흥미롭게도 센서가 망가진 돌연변이 벌레들이 촉각신경을 빛으로 켜주자 회피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센서가 망가져 있더라도 전체 회로가 정상적으로 남아 있고, 센서가 물리적 자극을 받았을 때 일으키는 전기적 사건을 광유전학적으로 빛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일으켰더니 그 회로가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실험은 상당한 함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광유전학이 인간의 신경정신 질환 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에서 연구팀은 ‘질병’에 걸린 벌레의 신경을 직접 조작해 질병 현상을 극복해 보였습니다. 이 결과는 동일한 방식으로 인간의 각종 질환과 장애들을 치료 혹은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광유전학적 기법을 통해 간질환자들의 신경 발작을 빛으로 억제하거나,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기분을 빛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00optogenetics5.jpg» 채널로돕신을 이용해 꼬마선충의 특정 신경을 켜주게 되면 춤추는 행동 반응을 보인다. 출처/ 주[3] 
제가 속한 연구팀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낸 적이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에는 꼬마선충이 굶으면 춤추는 ‘닉테이션’이라는 진기한 행동을 연구하는데, 신경세포의 감각 기구가 망가진 돌연변이가 더 이상 춤추지 않는 장애가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저희 연구팀은 이 벌레에서 빛으로 춤추는 행동의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켬으로써 다시 춤추는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주저 앉아있던 벌레를 ‘빛’으로 일으켜 춤추게 만든 것이죠.


브레인 이니셔티브, 판도라의 상자를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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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이용해 감각과 행동을 조절하고 신경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이용해 조작하고자 하는 신경회로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느 신경회로를 켜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면 광유전학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울증을 빛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우선 우울증과 관련된 신경회로를 잘 알고 있어야 이들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꼬마선충에서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꼬마선충이 지구상에서 가장 신경회로가 잘 밝혀진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300개 남짓한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꼬마선충의 전체 신경네트워크는 무려 30여 년 전에 그 신경지도가 거의 완전하게 밝혀졌습니다. 한 개체에서 신경세포들이 이루는 신경 네트워크 전체를 ‘커넥톰(connectome)’이라 부르는데, 꼬마선충은 현재 유일하게 커넥톰이 밝혀진 동물입니다.

이에 비해 1000억개의 신경세포를 갖고 있는 인간 뇌의 신경회로를 밝히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정도입니다. 아마도 21세기에 과학자들 앞에 놓여 있는 가장 거대한 난제가 바로 우리 두뇌를 해독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 런던에서 있었던 첫 모임을 필두로 세계 일군의 과학자들이 모여 인간 뇌의 전체 신경회로를 밝히는 포부를 품은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 줄여서 BRAIN)’를 구상했습니다. 2013년 4월2일,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사업의 개시를 선언했습니다. 당장 2014년부터 1억 달러의 연구비가 집행될 예정입니다.

00optogenetics6.jpg»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와 함께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꼬마선충 연구자로서 뿌듯하게도 꼬마선충 신경회로 연구의 대표 주자인 코리 바그만이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공동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꼬마선충 게놈 프로젝트의 경험과 결과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많은 도움을 주었듯이, 꼬마선충 커넥톰 연구의 경험도 향후 브레인 이니셔티브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초파리나 어류와 같은 단순한 생명체들의 신경 네트워크부터 차근차근 정복해 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종국에는 쥐와 영장류를 거쳐 인간의 커넥톰에 도전할 겁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목표를 달성할 확실한 분석 기술은 있으나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했던 사례였다면,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사실 목표를 달성할 완전한 기술조차 의문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정광훈 박사가 개발한 ‘투명 뇌’ 기술처럼 커넥톰 연구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들이 하나둘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인간 뇌에 도전하기에는 기술적 장벽이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언젠가 그 모든 장벽들을 넘어서는 날, 그리하여 영혼의 블랙박스와도 같던 우리 뇌의 신경회로가 완전히 밝혀지는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빛 리모컨을 이용해 <매트릭스>의 세계를 구현하고 데카르트의 신이 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과연 인간이 그런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또 얻는다면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미 그 판도라의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참고한 문헌


  • [1] Olds, J., and P. Milner. Positive reinforcement produced by electrical stimulation of septal area and other regions of rat brain. J. Comp. Physiol. Psychol. 1954; 47:419-27.
  • [2] Peter Hegemann and Georg Nagel. From channelrhodopsins to optogenetics.  EMBO Mol Med. 2013 February; 5(2): 173?176. 
  • [3] Lee H, Choi MK, Lee D, Kim HS, Hwang H, Kim H, Park S, Paik YK, Lee J. Nictation, a dispersal behavior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is regulated by IL2 neurons. Nat Neurosci. 2011 Nov 13;15(1):107-12.
  • Stirman JN, Crane MM, Husson SJ, Wabnig S, Schultheis C, Gottschalk A, Lu H. Real-time multimodal optical control of neurons and muscles in freely behaving Caenorhabditis elegans.Nat Methods. 2011 Feb;8(2):153-8. ([동영상] 채널로돕신 유전자가 이식된 벌레를 빛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동영상 자료 있음. 유료 학술지)http://www.nature.com/nmeth/journal/v8/n2/full/nmeth.1555.html#supplementary-information
  • Nagel G, Ollig D, Fuhrmann M, Kateriya S, Musti AM, Bamberg E, Hegemann P. Channelrhodopsin-1: a light-gated proton channel in green algae. Science. 2002 Jun 28;296(5577):2395-8.
  • Nagel G, Szellas T, Huhn W, Kateriya S, Adeishvili N, Berthold P, Ollig D, Hegemann P, Bamberg E. Channelrhodopsin-2, a directly light-gated cation-selective membrane channel.Proc Natl Acad Sci U S A. 2003 Nov 25;100(24):13940-5. Epub 2003 Nov 13.

이대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유전과발생연구실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앞으로 빛을 이용해 손상된 신경을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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